일본문학사에서, 그는 불멸이다. _인디펜던트
어느 날 새벽, 전차 조차장에서 얼굴이 뭉개진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경찰은 전날 밤 한 싸구려 술집에서 그 남자와 일행을 보았다는 목격담에서부터 수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계속되는 조사에도 실마리는 잡히지 않는다. 알아낸 것은 피해자가 도호쿠 지역 사투리를 쓴 것 같다는 증언과 ‘가메다’라는 단어뿐. 결국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베테랑 형사 이마니시는 가메다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경찰이 반쯤 포기한 사건에 끈질기게 매달리며 조사를 계속한다. 그러나 이마니시가 수사를 진행할 때마다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가메다’는 전혀 의외의 곳에서 정체를 드러낸다.
『모래그릇』은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 마쓰모토 세이초의 대표작이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많은 베스트셀러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으로, 출간 이후 다섯 번에 걸쳐 TV 드라마로 만들어질 정도로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작품 소개]
일본 사회파 범죄소설의 시원(始原)
거장 마쓰모토 세이초
마쓰모토 세이초가 일본문단과 학계에 끼친 영향은 실로 크다. 일본 고대사 연구로 남긴 저서들은 학계에 큰 자극이 되었으며, 패전 직후 미국에 점령당했던 시기에 일어난 사건들을 다룬 논픽션 『일본의 검은 안개』는 ‘검은 안개’라는 사회적인 유행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는 소설에 한하지 않고 역사와 사회학, 고고학에까지 조예가 깊은 작가였다.
그러나 특히 범죄소설 분야에서 세이초의 이름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가 발표한 추리소설들은 연속해서 베스트셀러가 되며 이른바 ‘세이초 붐’을 일으켰고, 그의 영향을 받은 다음 세대 작가들은 문단의 양상을 바꾸었다. 일본의 추리소설은 마쓰모토 세이초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당시 일본문학이라고 하면 작가의 개인적인 서술이 주가 되는 사소설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범죄소설에서도 다르지 않아서, 해결하기 어려운 사건이 일어나고 탐정이나 형사가 등장하여 그 트릭을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게 주된 형식이었다. 그러다보니 배경이나 인물 설정은 흥미롭지만 현실성은 떨어지기 마련이었는데, 세이초는 이러한 비현실성을 지적하면서 사회적 배경과 동기를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이초의 작품 안에서 범죄는 단순히 트릭으로 이루어진 사건이 아니다. 그 뒤에는 그런 범죄가 일어나게끔 만든 사회구조와 역사적 배경, 사회적인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세이초는 사건 이면에 숨겨진 구조적 모순을 파헤치는 데 전념했다. 범죄를 단순히 개인과 개인 사이에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라, 일그러진 사회구조와 그 구조로 인해 차별받고 희생당하는 개인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인과로 본 것이다. 이는 당시 범죄소설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새로운 관점이었다.
전후(戰後) 혼란스러운 사회와 공권력의 부정부패, 그리고 대중들의 편견을 주요 소재로 작품에 사용함으로써, 그의 작품은 단순한 대중소설이 아니라 사회의 모순과 병폐를 비판하는 고발문학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그의 작품과 함께, 일본문단에 이른바 ‘사회파 미스터리’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전후(戰後) 사회의 차별과 편견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저항
『모래그릇』의 배경인 1960년, 일본은 총체적으로 혼란스러웠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면서 일본은 큰 변화를 맞았다. 국토는 황폐해졌으며 경제적으로도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그 직후 한국의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 특수 및 미국의 지원으로 일본의 경제가 극적인 호황을 맞는다. 패전 직후의 혼란과 갑작스러운 경제 부흥으로 인해 사회는 비정상적인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정치권은 부패로 물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1960년은 이른바 ‘60년 안보’ 시기로, 미일상호방위조약 개정에 반대하는 투쟁이 벌어지고 연일 수만 명이 데모행진을 하며 국회를 포위하는 등 기득권층과 젊은 계층 사이에서 뜨거운 싸움이 계속되었다.
전쟁의 후폭풍과 비정상적인 계층간의 격차로 인해, 사회는 약자와 소수자들에게 폭력적인 입장을 취하기 시작했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사회를 그렇게 몰아간 역사적 배경과 그런 사회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포착해냈다. 『모래그릇』의 저변에 흐르는 메시지는 범인의 검거라기보다, 그가 살인까지 저질러야 했던 까닭인 당시 일본사회의 ‘차별’과 ‘편견’에 대한 고발이다. 차별과 편견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오히려 차별하는 입장으로 전환되기를 욕망하는 인간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등장인물을 통해, 부패하고 권위적인 기성세대와 무조건적으로 기존 관념을 비난하는 경박한 전후세대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전차 조차장에서 발견된 신원불명의 시체. 이 작품은 한 살인사건에서 시작해서 전후 혼란스러운 일본사회의 모습을 묘사하고 그로 인해 희생될 수밖에 없는 개인의 모습을 그려낸다. 뿐만 아니라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약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어떤 비극을 불러오는지를 보여준다. 『모래그릇』이 세이초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꼽히는 이유다.
“과장이 아니라,
마쓰모토 세이초의 세례를 받지 않고 추리소설을 쓰는 젊은 작가는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_미야베 미유키
일본문단에서 ‘세이초의 장녀’라 불리는 신세대 사회파 미스터리의 선두주자 미야베 미유키, 독특한 소재와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텔링으로 사랑받는 히가시노 게이고, 인간 내면의 어두운 본성을 파헤치는 하드보일드 작가 기리노 나쓰오 등 현재 일본의 젊은 미스터리 작가들 중 마쓰모토 세이초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작가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트릭에만 집중하던 범죄소설에 시대상과 사회적 사상을 반영함으로써, 일본문단에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다.
2009년은 마쓰모토 세이초가 태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해, 세이초의 출신지인 기타큐슈 시에서는 세이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1월부터 12월까지 세이초가 머물렀던 전국 명지에서 기념사업을 열었다. 또한 후지TV, NHK, TV아사히, TBS 등 대형 방송사들은 각각 스페셜 드라마를 제작하여 방송했다. 한 작가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이벤트를 벌이고 대형 방송사들이 함께 특별 방송을 마련하는 게 얼마나 흔치 않은 일인지를 생각하면, 일본에서 ‘거장’ 마쓰모토 세이초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
트릭이나 범죄 자체에 매달리기보다는 범죄의 사회적 동기를 드러내서 인간성의 문제를 파고드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붐을 일으킨 마쓰모토 세이초는, 오늘날 일본 미스터리 소설 작가들의 문학적 뿌리이자 영원한 스승으로 존경받고 있다. 41세 늦은 나이로 데뷔해서 숨을 거둔 82세까지 그는 “내용은 시대를 반영하고, 사상의 빛을 받아 변모해간다”는 신념을 지니고 전력투구의 필치로 천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궁핍과 학력차별을 뛰어넘어, 41세에 작가가 된 늦깎이
1909년 기타큐슈의 작은 도시 고쿠라에서 태어난 세이초는, 40세가 될 때까지 작가가 될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을 만큼 궁핍한 환경에서 열악한 세월을 보냈다.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역사는 1950년부터 마침내 극적으로 펼쳐졌다. <주간 아사히> 공모전에 그의 데뷔작 ?사이고사쓰?가 당선되었고, 이후 비록 재능은 있지만 고단한 인생을 보낼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주인공을 그린 ?어느 <고쿠라 일기> 전?으로, 대중적 인기를 반영하는 나오키 상에 후보로 올랐다가 도리어 아쿠타가와 상에 당선되는 행운을 거머쥔다. 대중문학과 순문학의 경계가 무너지는 실로 파천황 같은 대반전이었다.
일분일초도 허비하지 않고 작품을 쓴 전력투구의 자세
이후 전업작가로 나선 세이초는 창작력에 불이 붙으면서 “공부하면서 쓰고, 쓰면서 공부한다”는 각오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1955년에 발표한 ?잠복?부터 장편소설 <점과 선>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연이어 <제로의 초점>, <눈동자의 벽>, <모래그릇> 등을 내면서 세이초는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부동의 지위를 쌓는다. 그는 마치 중년에 데뷔한 한을 풀기 위해 일분일초도 헛되이 낭비하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그의 모든 생애를 창작활동에 쏟아 부었다. 작가 생활 40년 동안에 쓴 장편이 약 100편이고, 중단편 등을 포함한 편수로는 거의 1,000편, 단행본으로는 700여 권에 이른다. 많이 썼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이다.
추리소설에서 논픽션까지, 시대와 정면으로 대치하다
소설가로 자리를 잡자마자, 세이초가 다음으로 파고든 것은 논픽션이었다. 1961년 51세에 문제작 <일본의 검은 안개>를 발표해서 일본 사회를 뒤흔들었다. 이때부터 일본에서는 사회나 조직의 불투명한 비리를 표현할 때 ‘검은 안개’라는 말이 대유행처럼 쓰였다. 이어서 1964년부터 7년간에 걸쳐 집필한 <쇼와사 발굴>은 그의 작품 가운데 혼신의 대작이라고 할 만한 것이다. 끊임없는 자기공부와 불굴의 정신력으로 자신을 채찍질했던 세이초였기 때문에 픽션, 논픽션, 평전, 고대사, 현대사 등으로 창작 세계를 무한히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이초는 평생 온갖 규범을 넘어선 작가였고, 전쟁과 조직과 권력에 반대한 사람이었다. 그로 인해 문단과 학계에서는 한 번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1976년부터 실시한 전국 독서 여론조사(마이니치 신문 주최)에서 10년 동안 ‘좋아하는 작가’ 1위에 선정되면서 명실상부하게 국민작가의 지위를 얻었지만, 관에서 받은 훈장은 평생 동안 단 하나도 없었다.
1권
1장 토리스 바의 손님
2장 가메다
3장 누보 그룹
4장 미해결
5장 종이 날리는 여자
6장 방언 분포
7장 혈흔
8장 변사
2권
9장 모색
10장 에미코
11장 그녀의 죽음
12장 혼미
13장 실마리
14장 무성無聲
15장 항적
16장 어떤 호적
17장 방송
해설 | 일본 근대사회의 집합적 무의식, 그 터부를 비평하다
마쓰모토 세이초 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