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의 국문학자 김태준(金台俊)이 1930~31년에 집필해 당시 신문에 연재한 글을 일부 수정해 1933년에 단행본으로 펴낸 『조선소설사』를 되살린 책이다. 근대적 소설 개념에 입각한 한국소설사로는 최초의 저작이다. 저자의 생전 마지막 저술인 「연안행」을 부록으로 실었다.
일제강점기의 한문학자이자 국문학자. 호는 천태산인(天台山人). 1905년 11월 평안북도 운산에서 태어나 영변농학교와 이리농림학교를 거쳐 1926년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했고, 1928년 예과를 마친 뒤 같은 대학 법문학부 중국어문학과에 진학해 1931년 졸업했다. 이후 명륜학원 강사, 명륜전문학교 조교수, 경성제국대학 강사를 지냈다. 1940년부터 경성콤그룹(조선공산당재건 경성준비그룹)에 참여했다가 검거되어 1941~43년 옥고를 치렀다. 항일 무력운동의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 1944년 11월부터 1945년 4월까지 일제의 경계망을 뚫고 국외로 탈출해 중국 연안으로 갔다가 1945년 8월 일제의 패망 소식을 듣고 11월 귀국했다. 12월 경성대학 총장에 선출됐으나 미군정청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1946년 11월 남조선노동당의 문화부장에 임명됐고, 1947년 ‘8·15폭동 음모사건’ 연루자로 연행되어 일시 투옥됐다가 석방됐다. 이후 남조선노동당 간부로 문화공작과 특수정보 분야의 지하활동을 하다가 1949년 7월 체포되어 이적간첩죄로 재판을 받고 11월 총살로 처형됐다. 생전에 단행본으로 출판된 저서로는 『조선소설사』·『조선한문학사』·『청구영언』·『고려가사』가 있고, 신문·잡지·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이나 수필로는 「조선의 한문학 원류」·「강담 중국영화」·「임제의 연문학」·「연암소설 경개」·「중국의 한자폐지 운동」·「성씨·문벌·족보의 연구」·「열두 달의 명칭」·「진정한 정다산 연구의 길」·「조선역사의 변천과정」·「단군신화 연구」·「조선민란사화」·「야담의 기원에 대하여」·「원조선인에 대한 고찰」·「조선가요개설」·「신라 화랑제도의 의의」·「연안행」 등이 있다. 이들 저작은 1947년에 발표된 「연안행」 외에는 대부분 1930년대에 집필되고 발표됐다.
서를 대신하여
제1편 서론
제2편 설화시대의 소설
제3편 전기소설과 한글 발생기
제4편 임진·병자 양란 사이에 발흥된 신문예
제5편 일반화한 연문학의 난숙기
제6편 근대소설 일반
제7편 신문예운동 40년간의 소설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