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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 위의 얼굴- 세계추리소설 걸작선 11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 한즈미디어
  • 등록일2018-01-24
  • 파일포맷epub
  • 파일크기0 K  
  • 지원기기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태블릿, PC
  • 보유현황보유 2, 대출 0, 예약 0
  • 평점 평점점 평가없음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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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1874-1936. 영국의 그리스도교 변증가·언론인·비평가·시인·수필가·소설가·단편작가. 호탕한 성격과 육중한 체구로도 유명하며, `역설의 거장`이라 불린다. 1874년 영국 런던 출생. 명문인 세인트폴을 졸업하고 슬레이드 아트 스쿨에서 미술을,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문학을 공부하였다. 체스터튼의 작품 속에서 사물에 대한 묘사가 돋보이는 것은, 그의 이 화가로서의 경력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훌륭한 추리소설에서 서스펜스의 요소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장면과 분위기 묘사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특히 빛과 하늘을 묘사하는 데 탁월했다.미술평론가로 글쓰기를 시작한 체스터튼은 이후 수백 편의 시, 다섯 편의 희곡, 다섯 권의 장편소설을 비롯하여 약 이백 편의 단편소설들을 발표하였다. 체스터튼의 작품 중 가장 인기 있는 브라운 신부 이야기는 잡지에 먼저 게재되었다. 이후 다섯 권의 단행본이 『결백』(1911) 『지혜』(1914) 『의심』(1926) 『비밀』(1927) 『스캔들』(1935) 등의 차례로 출간되었다. 브라운 신부의 실제 모델은 그의 친구인 존 오코너 신부로 알려져 있는데, 브라운 신부의 역설적이고도 기지 넘치는 발언들은 1922년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한 작가 자신의 모습과 종종 겹치기도 한다. 늘 우산을 들고 다니는 브라운 신부의 이미지가 워낙 유명해져서, 우산을 탐정의 상징으로서 사용하던 기존의 출판사들이 모두 이를 바꾸어야 했을 정도로 그 당시 영국 추리소설계에 체스터튼과 브라운 신부가 미친 영향은 컸다. 체스터튼은 그밖에도 저널리스트로서 4000편이 넘는 신문 칼럼을 기고하는 한편, 『G. K.`s Weekly』라는 자신의 주간지를 직접 편집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그 당시의 지성인들인 조지 버나드 쇼, H. G. 웰스, 버트란드 러셀 등과 논쟁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체스터튼이야말로 그 모든 논쟁들의 승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를 잊고 패자들만을 칭송하고 있는 것이다. 1900년에 두 권의 시집을 낸 이후로 정치·사회 비평 및 로버트 브라우닝, 찰스 디킨스, 조지 버나드 쇼 등에 대한 문학 비평 분야에서 활동하였고, 1922년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 정통적인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자유롭기 그지없는 논객으로 다재다능한 활약을 선보였다. 『브라운 신부의 결백 The Innocence of Father Brown』(1911년)으로 시작되는 그의 추리 소설 `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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