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함을 활용하면, 인생이 달라진다
우리는 왜 주말을 기다리며 일주일을 숨 가쁘게 보낼까? 왜 퇴근 후에 맥주를 마시거나 TV를 보면서 시간을 때우는가? 막상 기다리던 주말이 됐을 때 아무런 약속이 없으면 왜 허전하고 불안할까?
정답은 지루함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지루함을 느낀다. 이런 지루함을 채워 넣기 위해 쉴 새 없이 부산하게 움직이거나 의미 없는 활동에 열중하는 척 스스로를 속인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도, 우리의 본능과 지루함을 터부시하는 사회의 압박이 지루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도록 항상 무엇인가를 하려고 한다. 이런 과정에서 지루함을 때우기 위해 하는 행동들 때문에 중독이 일어나거나 스스로를 파괴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언뜻 보면 지루함 때문에 우리의 몸과 정신이 파괴되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다르다.
지루함 때문이 아니라 지루함을 회피하려고 하는 행동이 파괴를 낳는다. 지루함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간은 지루함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지루함을 느끼는 순간, 지루함을 회피하기 위해 TV라도 보면서 ‘시간을 죽이’거나 술을 마시거나, 친구를 만나기 위해 약속을 잡으려고 한다. 이런 과정이 계속 이어지면, 정작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을 갖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지루함을 느낄 때 지루한 시간을 자신을 돌아보고 인생의 의미를 찾는 시간으로 바꾸는 것이다.
지루함의 힘
인간은 24시간 항상 무엇인가에 몰입할 수 없다. 하지만 끊임없이 일하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찾을 때 번아웃 현상이 온다. 지루함은 우리에게 잠시 쉬고 인생의 큰 그림을 바라볼 시간과 공간을 안겨 준다. 창조건 소비건 잠시 끊고 쉬어야 다시 시작했을 때 즐겁다. 인생에 있어서 한계효용체감을 느낀다면 더욱 지루함의 시간이 필요하다.
지루함이 우리에게 가장 큰 즐거움의 공간으로 바뀔 때는 창의성을 발휘할 때다. 저자는 지루함과 창의성의 관계를 ‘끈끈한 관계’로 표현한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일에 전적으로 집중하고 몰입하지만, 몰입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무엇인가를 해결하기 위해 몰입하면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루함의 공간에서는 정반대다. 우리의 정신은 지루함이 달갑지 않다. 지루함을 느낄 때 우리의 정신은 모든 힘과 창의성을 합쳐 다시 무엇인가에 몰입하려고 한다. 이때가 위대한 발상과 창의성의 돌파구가 되는 순간이다.
우리는 지루함에 공간을 내줄 시간이 필요하다. 지루함을 곧바로 채우기 위해 TV나 게임에 지루함이 차지할 공간을 내어주게 되면, 창의적인 발상이 끼어들 틈이 사라진다. 대화를 하는데 자기 혼자서만 계속해서 말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끼어들 틈이 없다. 당신이 조용해졌을 때 다른 이들이 침묵의 공간을 채울 수 있다. 우리는 지루함이라는 섬을 통해 우리의 삶이라는 큰 그림을 조감할 기회를 얻게 된다.
지루함에서 탄생한 ‘삼시세끼’
tvN 나영석 PD는 2017 칸 라이언즈 세미나 ‘지루함의 힘, 평범함이 놀라움이 될 수 있다’에서 지루함을 느끼는 순간이 ‘삼시세끼’를 기획하게 된 계기라고 밝혔다. 그는 계속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지루함을 느꼈는데, 그 순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돌아보았고, 휴가 때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자문하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찾은 끝에 내린 결론은 ‘무위도식’. 그간 세상에서 부정적 가치로만 여겨졌던 무위도식하는 삶을 긍정적인 가치로 받아들이게 됐고,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는 ‘삼시세끼’로 이어졌다.
심심할 시간을 주는 이탈리아 교육
《이탈리아의 사생활》의 저자 알베르토 몬디는 이탈리아에서는 어린이들이 심심할 시간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한다. 배우는 시간도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가끔 심심해야 개인의 취향이 생기고, 전혀 생각지 못한 것들을 만들어내는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으른 이탈리아인’이라는 편견 이면에는 취향이 확실하고 창의력 넘치는 이탈리아인이 존재하는 것이다.
지루함은 삶의 의미를 재구축하고 창의성을 발휘하는 근원
나영석 PD가 지루함을 느낄 때 새로운 아이디어를 뽑아 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탈리아가 패션과 자동차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이룬 것도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지루함의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낼 때, 우리는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
《당신은 지루함이 필요하다》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던 지루함이라는 감정이 가진 힘을 직시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실용 철학서’다. 지루함이라는 감정을 일상의 예시를 통해 공감할 수 있게 설명하고, 철학자들의 정의보다는 우리가 흔히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통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무엇보다도 지루함이 지나간 삶을 돌아보고, 목표를 재설정하며, 창의성을 발휘하는 근원이라는 점은 신선한 충격을 준다. 쓸모없는 감정으로 치부되었던 지루함이 가진 가능성과 활용 방법을 보여주는 부분은 기존 철학서가 가진 따분함과 거리가 멀다.
저자의 한국 생활 경험이 녹아 있다
우연치 않게도 저자 마크 호킨스 박사는 한국에서 2년 동안 거주하며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다. 지루함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그래서인지 우리가 더욱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나도 그래”라며 고개를 끄덕일 장면들이 많다. 특히 한국의 ‘멍때리기 대회’를 언급하며, “우리의 시선을 빼앗는 모든 위험 속에서도 존재에 더 마음을 쏟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주의 분산의 벽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는 신호가 감지된다”라고 평가하는 대목은 매우 반갑다.
책은 가볍지만 메시지는 무겁다
《당신은 지루함이 필요하다》는 148쪽의 분량이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하루면 다 읽을 수 있다.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철학적 개념을 이해하기 쉽도록 번역에 심혈을 기울였다. 여기에 틈새책방 특유의 빠른 호흡을 가진 편집으로 가독성을 더했다.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 책은 가볍지만 메시지는 묵직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지은이: 마크 A. 호킨스
캐나다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교에서 교육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양과 서양의 철학 개념을 통합해, 오늘날 인간의 삶을 탐구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심리 상담도 병행하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도 있다. 한국에서 2년 동안 거주했다.
옮긴이: 서지민
이화여자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영국에서 수학했다. 1994년부터 영화, 방송, 출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 번역가다. 《풋볼멘》, ‘루저스’, ‘드론’, ‘크로노스’, ‘토탈 이클립스’, ‘쇼팽’ 등의 책과 영화를 우리말로 옮겼다.
해제: 박찬국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니체와 하이데거의 철학을 비롯한 실존 철학에 관심이 많다. 서양 철학과 불교 철학을 비교하는 것도 주요한 연구 관심 중 하나다. 지은 책으로는 《하이데거와 나치즘》, 《에리히 프롬과의 대화》, 《초인수업》등이 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작가의 말
여는 말
1부. 지루함을 이해하기
제1장_ 지루함이란 무엇인가?
제2장_ 우리는 왜 지루함을 회피하는가?
제3장_ 지루함을 회피하려는 파괴적 반응들
2부. 지루함의 힘
제4장_ 지루함은 명상, 그 이상이다
제5장_ 지루함으로 향하다
제6장_ 일상 속 지루함의 중요성
제7장_ 지루함과 창의성의 끈끈한 관계
제8장_ 윤리적 실천의 토대, 지루함
제9장_ 다시 지루함을 꺼내는 이유
철학자의 덧붙임 | 박찬국 서울대 철학과 교수
옮긴이의 말 | 서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