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 오찬호, 죽도록 속상하고 억울한 ‘대한민국 부모’를 만나다
‘육아’ 문제는 한국 사회의 ‘연애-결혼-출산’에 관한 궤적과 이어져 있다.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수없이 반복해왔던 ‘현실론이라는 주판’을 두들기며 타인과의 만남을 계산한다. 연애할지, 결혼할지, 출산할지 말이다. 부모는 이 갈림길에서 ‘YES’를 선택한 사람이다. 고민이 깊었던 만큼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자녀를 보란 듯이 키워서’ 증명하려 한다. 이 책에서는 0세부터 12세 사이의 자녀를 둔 한국의 부모들이 ‘과연 자녀를 시민으로 키우는’ 육아를 하는지 비판적으로 관찰하면서 ‘그 부모’의 민낯을 들여다본다. 모순된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그 속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강박 속에서 결혼했고 육아를 하고 있는지, 그 민낯의 괴기스러움을 먼저 확인해야 하지 않겠는가. 부모가 느끼는 그 억울함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이 되어야 한다.
1. 대한민국에서 육아는 딜레마다
- 지금, 나는 괜찮은 부모일까?
연애 다음의 과정에 얽매이는 시대는 지났다. 비혼을 선택하거나 결혼하더라도 아이 낳기를 거부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세상에서 결혼하고 부모가 된 이들은 스스로 고통의 문을 연 사람들이다. 결혼을 새로운 출발로 굳게 믿었지만 세상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 부모가 되고 나니 ‘나’로 사는 것에 포기해야 하는 것들은 쌓여만 가고, 그 상처는 먼저 상처 입은 이들에 의해 ‘할 만한’ 대수롭지 않은 것이 되니 얼마나 억울한가. 억울함을 자녀를 보란 듯 키워 억울함을 만회하리라는 욕망은 인간적으로야 이해 가지만 그래서 명백히 반사회적이다.
스스로 ‘나 정도면 보통이고 평범하지, 그러니 우리 아이도 사회에서 중간은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자녀를 키우는 수많은 부모가 있다. 이 책은 그런 수많은 부모들이 자본주의에 대해 체념하고 순응해 만들어낸 결혼-출산-육아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날것 그대로 담았고,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우스운 현장의 모습을 가감 없이 모았다. 누군가와 결합해 가정을 이루고 누군가를 기르며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치열함을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부모가 맞닥뜨리는 이 불편한 지점을 통해 궁극적으로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우리 사회’가 아닌 ‘우리 가족’만을 위한 프로젝트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나부터가 문제인데 그럼에도 글을 쓰는 이유는 나처럼 많은 사람이 ‘육아조차 경쟁하는’ 걸 가능케 하는 이 부모라는 갑옷에 답답함을 느낄 거라는 확신 때문이다. 부모들은 부모가 아닌 사람이 보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는 이상한 육아를 적극적으로 실천한다. 이 잘못된 방향으로의 질주를 멈추고 싶어 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많은 부모들이 옳다는 쪽을 제대로 알려주는 이정표를 찾는다. (…) 이때 고정관념을 깨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학은 큰 도움이 된다. 사회학이 제공하는 비판적 시선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원래 그런 것’이 일으키는 부작용을 발견하게 한다. 어떤 방향이 틀렸는지 알아낸다면 우리는 옳은 방향을 찾을 가능성을 조금씩 높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
-〈머리말〉 중에서
2. 대한민국 부모라면 공감할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보고서’
- 한국 사회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회학자 오찬호의 생생한 취재와 분석
사회학자 오찬호는 첫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2013)에서 학력과 스펙을 기준으로 차별의 벽을 공고히 쌓은, 비정규직과 지방대생의 눈물에는 공감하면서도 이들에 대한 차별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20대들을 날카롭게 들여다보며 등장했다. 이어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2016)에서는 꿈꿀 수 없는 헬조선에서 어떤 것보다 되기 어려운 ‘공무원’을 꿈꾸며 살아가는 청년들의 잿빛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이번에는 그런 20대를 거쳐 부모가 된 이들의 삶에 주목했다. 결혼과 출산과 육아를 선택하며 죽도록 열심히 살아온 억울한 부모들을 직접 만나 취재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국 사회에서의 ‘결혼과 육아’의 민낯을 낱낱이 파헤쳤다. 이 책의 뼈대가 되는 내용을 네이버의 ‘파워라이터 ON’ 〈오찬호의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에 연재하면서 수많은 공감과 날 선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의 글쓰기는 글 속에 갇혀있지 않고 세상을 향한 실제 목소리에 근접해 생생하고 매력적이다.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저자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것이다. 현실을 ‘버틸’ 아이를 기르는 것이 아니라 버티지 않고도 누구든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 모두의 몫임을 잊지 말자는 것. 단순히 ‘사교육으로부터 자녀를 해방시켜라’ 같은 뜬구름을 잡자는 게 아니라, 부모가 원하는 삶에 자녀들이 세팅되고 있지는 않은지, 자녀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설계하는 데 부모가 어떤 방해를 하고 있는지 우선 진지하게 스스로 되물어보는 시간을 갖자는 것. 이 질문에 자유로울 수 있는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키웠지만 저주받은 현실은 변함이 없다. 삶의 현장에서 한 발짝 걸어 나와 객관화해 이 ‘기괴한’ 연애-결혼-육아의 현장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이 글을 읽은 독자의 공감!
“결혼으로 시작된 출산과 육아는 엄마 혼자 몫이 아니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완고한 모성의 틀을 깨고 부모가 함께하는 슬기로운 육아생활을 해야 한다.” -klimt0610
“정말 인상 깊은 글이다. 아이는 게임 캐릭터가 아니기에 아이의 성장 방향은 시시각각 바뀐다. 모두가 기준에 맞춘 똑같은 육아를 한다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가.” -NU헤테로
“우리가 연대해 모순된 사회를 바꿔나가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살게 될 세상은 지금보다 더 공포스러울 것이다. 더 늦기 전에 힘을 모으길 소망하며!” -카르멘
3. 육아의 물줄기는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 부모의 ‘자녀소유’를 넘어 모두의 ‘자녀보호’를 향해
지금 우리는 부모라는 이유로 자녀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목적이랍시고 세상의 이상한 기준을 맹목적으로, 또 많이 따르게 한다. 지방이 너무 많아 여러모로 아픈 소가 마블링이라는 얼토당토않은 기준으로 최상급이 되어버린 것처럼 우리는 자녀를 그런 아픈 소로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 그저 주변의 평가가 ‘좋다’, ‘괜찮다’, ‘멋있다’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부모가 강요하는 기준이 과연 ‘사회적으로도’ 옳은지 묻지 않고 부모 노릇이 완성될 수 없다.
‘부모 노릇’이란 고도의 이성적 판단 행위다. 살아보니 어쩔 수 없다며 ‘일상적 민주주의’를 포기해버리면 그 대가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몫으로 돌아올 것이다. 경쟁을 정당화할수록 차별과 혐오는 면죄부를 얻고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부모 말 잘 들을수록 자녀들은 이른 나이부터 지독한 자본주의를 체험하며 나중에는 자신의 부모보다 더한 각오를 다지는 괴물이 될 것이다. 그런 나쁜 사회로 더 흘러가도 정말 괜찮을까? 자녀가 그릇된 사회에서 버티기 위한 생존의 테크닉만 몸에 지닌 채 어른으로 키우는 것을 정말 사람의 육아라 할 수 있을까? 사랑스러운 내 아이가 살 미래를 위해서라도, 죽도록 힘든 부모를 위해서라도 이 모순된 사회에 굴복하고 사는 것은 멈춰야 한다. 사람들이 이 딜레마를 인지하고 좋은 쪽으로 천천히 이동시키는 흐름을 만들어나가는 것, 이 역시 진보라는 역사의 물줄기일 것이다. 그것이 시민의 의무이고 곧 부모로서의 성장이리라.
“자녀를 ‘내가’ 보호해야 한다는 범위를 넘어선 ‘내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에는 정말로 많다. 많은 이들이 자녀보호와 자녀소유를 혼동한다. 마치 소유권이 있으니 어떻게 보호하든 간섭하지 말라는 식이다. (…) 자녀보호는 말 그대로 어른이 아닌 사람을 어른이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할 대상의 범위가 매우 넓다는 것이다. (…) 자녀소유는 ‘내 것’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올바른 사회적 가치에 자녀가 노출될 수 있도록 부모가 더 노력하겠다는 의미여야 한다. 그래야 내 아이 더 바르게 키우겠다는 다짐이 가능하고 내 아이 멋대로 키우겠다는 자기소유의 강박이 사라질 수 있다.”
-〈사랑하면 괜찮은 걸까?〉 중에서
1978년에 대구에서 태어났다. 12년간 여러 대학에서 사회학을 강의하고 있다. 최근에는 작가라는 호칭에 어울리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비판적 글쓰기는 대중과 소통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편견에 맞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생생한 일상의 사례를 발굴해 사회가 개인을 어떻게 괴롭히는지 드러내는 작업을 부단히 하고 있다.
전국 70여 개 대학에서 토론 주제로 선택된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2013)를 시작으로 《진격의 대학교》(2015),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2016),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2016), 《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2018) 등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민낯을 고발하는 여러 책을 집필했다. 청소년에게 사회학으로 세상을 읽는 방법을 소개한 《1등에게 박수 치는 게 왜 놀랄 일일까?》(2017)는 경남독서한마당 선정도서로, 실천 인문학이라는 부제를 단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2018)는 국립중앙도서관 추천도서로 뽑히기도 했다.
JTBC 〈차이나는 클라스〉와 〈말하는대로〉, tvN 〈어쩌다 어른〉과 〈젠틀맨리그〉,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KBS 〈서가식당〉 등 여러 방송에 출연해 ‘불평불만 투덜이 사회학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세상이 좋은 쪽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유쾌한 염세주의자’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 별명으로 불리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프롤로그 억울함은 부메랑이 되어
1 “결혼 안 해?”가 아닌 “결혼을 왜 해?”라고 묻는 세상에서 결혼하기
- 비혼자들이 기혼자들의 억울함을 대신 말하다
- 연애 강박의 시대가 만들어내는 이상한 다짐들
- 누가 결혼을 새로운 출발이라고 했나?
2 임신과 출산은 억지 규칙으로 가득 찬 세상이었다
- 가장 악질적으로 ‘남용’되는 말, 모성
- 소비하는 부모의 탄생: 출산?육아 박람회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 산후조리원은 좋고도 나쁘다
3 ‘그들만을 위한’ 육아서의 범람
- 모든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는 육아서
- 생물학적 남녀 차이를 강조할수록 사회적 남녀 차별은 정당화된다
- 책을 혐오하게 만드는 독서법 과잉의 시대
4 이상적 육아라는 이상한 육아
- 자연과 함께했으니 우리 아이는 특별할 것이라는 착각
- 거대 자본에 길들여진 부모들, 길들여질 자녀들
- 일하면서 아이 잘 기를 수 없는 이상한 사회
5 유용한 사교육의 유해성
- 사교육 시키는 부모에게 책임을 묻지 마라
- 모두가 ‘평가’에 길들여진다
- ‘왕따’를 참고 버티도록 해주는 놀라운 마약
6 사랑하면 괜찮은 걸까?
- 당신은 어떤 ‘MUST’를 남발하십니까?
- 사춘기는 한때여야 한다
에필로그 자녀의 ‘정직한 독립’을 꿈꾸며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