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리 마리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바로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계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멋대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점을요.”
_사노 요코(『사는 게 뭐라고』, 『100만 번 산 고양이』 작가)
“우리는 모두 사금처럼 반짝이는 순간들을 갖고 있다”
모리 마리가 전해주는 행복의 비밀
여기 누가 봐도 대책 없이 곤란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다. 두 번의 이혼에 가난한 살림, 집은 정리가 안 돼 바닥이 보이지 않고 여기저기 방치한 꽃들은 저절로 드라이플라워가 될 지경. 주변 사람들은 걱정으로 밤잠까지 설치는데, 정작 본인은 무사태평 장미꽃이 새겨진 화려한 찻잔에 홍차만 달여 마시고 있다.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와 상관없이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는 바로 일본의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모리 마리다.
미시마 유키오로부터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버금가는 관능미와 섬세함을 갖췄다”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뛰어난 문장가이자, 나쓰메 소세키와 쌍벽을 이루는 대문호 모리 오가이를 아버지로 둔 휘황한 이력을 가진 모리 마리지만, 인생은 결코 쉽거나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화려했던 과거와 초라한 현실을 비교해 좌절하는 대신, 맛있는 것을 먹고 요리를 하거나, 홍차 한 잔의 여유와 장미 한 송이의 사치를 즐기는 등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들로 삶을 채워나갔다. 사금(砂金) 하나하나는 지극히 미미하지만 손바닥 가득 모으면 무엇보다 찬란하게 반짝인다. 하루하루의 작은 행복들로 자기 인생을 빛나는 것으로 만들 줄 알았던 모리 마리의 일상을 지켜보노라면, 어느덧 우리 손바닥 위에도 사금처럼 잘지만 선명하게 반짝이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괜찮아, 먹고 싶은 건 매일 있으니까!
좀 서툰 인생도 맛있는 음식 앞에선 순식간에 근사해진다
『홍차와 장미의 나날』은 모리 마리의 대표적인 취향인 탐식(貪食)과 미식(美食)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그런데 취향만큼 그 사람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건 없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뭔지, 삶에서 무엇을 중시하며, 평소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선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책이 단순히 맛있는 음식만을 다룬 에세이가 아닌 이유다. 유년 시절의 추억부터 친구들과 얽힌 때로는 곤란하고 때로는 유쾌한 에피소드들까지, 모리 마리의 일상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그의 솔직한 매력과 취향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달콤한 살구타르틀레트 앞에서는 입을 잔뜩 벌리고 “나는 한 마리 육식동물이다”라고 선언하기도 하고, 맛없는 햄버그스테이크를 받아들고 “이게 아냐. 이건 싫어!”라고 화를 내며 툴툴거리기도 한다. 아버지처럼 자신을 아껴준 은사인 시인 무로우 사이세이가 애써 건넨 장어 요리를 두고 “모양부터 질렸다”라고 신랄한 독설을 거침없이 내뱉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도 괜스레 웃음을 짓게 된다.
또 스스로를 “넘치게 훌륭해서 훌륭함이 거스름돈을 내줄 정도”의 미식가로 자처하면서도 “잘난 체하는 사람보다 그저 좋아하는 음식이 많고, 먹을 때 즐거워할 줄 아는 사람이 훨씬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모습에서는 행복에 대한 모리 마리 특유의 철학을 느낄 수 있다. 맛있는 것 앞에서만큼은 누구라도 ‘무장해제’가 된 채 솔직한 모습을 보인다. 매끼 자기 취향의 ‘먹고 싶은 걸’ 먹는다는 것은 가장 솔직하게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이다. 혼자서 먹든 친한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며 먹든,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것이야말로 때때로 좀 서툴거나 곤란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인생을 매일매일 그리고 순식간에 근사하게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비법이라고, 모리 마리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른’ 되기가 여전히 서툰 이들에게 건네는
뻔뻔한 나르시시스트의 당당한 위로
누구나 나이가 들면 어른이 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인생은 곤란한 일들의 연속이다. 오늘날 ‘YOLO(욜로)’나 ‘소확행’이 가장 중요한 소비 트렌드로 떠오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당장의 만족만 좇는 모습이 ‘철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진학, 취직, 결혼, 육아… 사회적 기준을 좇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그런데 그런 어른이 되면 행복할까? 모리 마리는 당당하게 이렇게 말한다. “여태껏 마음이 어른스러워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제 죽을 때까지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기보다 언제까지나 자기 자신이 세상에서 최고인, 곤란한 인간인 것 같다. 쓸 수 있는 약도 없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나 자신만 생각할 테지!”
행복의 핵심은 바로 ‘나 자신으로 사는 것’에 있다. 모리 마리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홍차와 장미의 나날』에는 ‘어린 아이인 채로 몸만 어른이 된 사람’이라는 평가처럼 시종일관 철없고 제멋대로에, 하고 싶은 건 기어이 하고, 하기 싫은 건 떠넘기는 뻔뻔한 매력이 드러난다. 바람난 남편도, 따분한 남편도 참지 않고 이혼을 감행하고, ‘호화로운 가난의 미학’을 외치며 궁핍한 살림 속에서도 자기 취향을 포기하지 않을 만큼, 모리 마리는 세상에서 자기 행복이 가장 중요한 사랑스러운 나르시시스트다.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삶을 결코 진흙탕으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모리 마리의 당당한 행복론은 ‘어른 되기’를, 타인의 눈치 보기를 강요받는 이들에게 따스한 위로를 건넨다. 지금 모습도 괜찮다고, 아니 좀 더 뻔뻔해져도 충분히 멋지게 사는 거라고 말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으면 소설이 안 써진다”라고 말하는 일본 최고의 미식가이자 소설가, 에세이스트. 나쓰메 소세키와 더불어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모리 오가이의 장녀다. 아버지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유년 시절과 달리, 두 번의 결혼 생활은 모두 파국으로 끝나는 불행을 겪었다. 이혼 후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할 수 없이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미시마 유키오로부터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버금가는 관능미와 섬세함을 갖춘 작가”라는 극찬을 받을 만큼 환상적이고 우아한 세계를 표현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수필집 『아버지의 모자(父の帽子)』를 비롯해 『연인들의 숲(恋人たちの森)』, 『달콤한 꿀의 방(甘い蜜の部屋)』 등 많은 장편소설을 남겼다.
“정신은 어린아이인 채로 몸만 어른이 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솔직하고 제멋대로의 성격에 생활 능력이 없는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유일하게 요리 실력은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상당한 솜씨였다고 한다. ‘호화로운 가난의 미학’이 생활신조일 만큼 빠듯한 형편에도 다양한 취미 생활을 즐겼으며 또한 미식가였다. 때로 지치고 힘든 일상에서도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아 만끽할 줄 알았던 모리 마리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 정신의 선구자였다.
옮긴이 서문 정신적 귀족이 만드는 우아한 세계
1 사랑스러운 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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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홍차와 장미의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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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은이 후기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으면 소설이 안 써진다”
해설 모리 마리 최강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