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가 근대화되기 시작했고, 자본주의가 도입되었다?
개성상인 장부 속 자본주의 정신,
식민지 근대화론을 부수는 증거가 되다!
2005년 한 고문서가 발견되었다. 개성상인의 후예인 박영진 씨 가문에서 보관해오던 방대한 우리 고유의 회계 장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수년간의 탈초(脫草) 작업과 전문가의 분석 끝에 마침내 이 장부는 현전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복식부기 장부로 밝혀졌고, 2014년 등록문화재 587호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이 장부는 단순히 세계 최고(最古)의 복식부기 장부로서만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다. 박영진가 장부에는 개성상인이 자본주의적으로 사고하면서 경영했던 내용이 담겨 있다. 사실상 서양 자본주의 경영보다도 앞서 자본주의적 개념을 실제 경영에 적용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에 비로소 근대화되기 시작했고 자본주의도 도입되었다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 역시 헛된 주장임이 드러난다.
『개성상인의 탄생』은 20세기 전에 복식부기로 기장한 완전한 장부가 조선에 있었고, 이 장부에 자본주의적으로 사고하고 실천한 개성상인의 현대적 경영 기법들이 반영되어 있었음을 요약해 보여주는 책이다. 제1장에서 제3장까지는 우리 전통 회계의 탁월함과 복식부기가 자본주의에서 왜 중요한지에 관해 기술했고, 제4장에서는 박영진가 장부가 복식부기임을 논증했다. 제5장에서는 박영진가 장부에 나타난 현대 자본주의적 사고와 경영 기법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했고, 제6장에서 제8장까지는 우리 역사에서 자본주의적 사고의 연원을 고찰했다.
이를 통해 개성상인의 자본주의적 사고가 폄하되고 타기해야 할 대상이 아님을, 또한 회계 투명성 확보를 신앙의 경지로 승화시키고 상생경영을 실천한 개성상인의 경영 윤리는 오늘날 자본주의의 결함을 치유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고 헌창해야 할 역사적 사실임을 보여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완전한 복식부기,
개성상인 장부에서 배우는 자본주의 정신!
오늘날 우리가 활용하는 복식부기는 서양에서 전래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고려시대에 복식부기가 발명되어 사용된 것으로 전승되어 왔다. 현병주 선생이 1916년에 『실용자수 사개송도치부법(전)』을 펴내 우리 복식부기 원리에 관한 책을 저술한 이래 우리나라에도 고유한 복식부기가 있었는지에 대한 여러 연구가 있었다. 이들 연구는 단편적인 옛 장부를 분석했다. 연구의 결론은 우리 전래 장부가 복식부기인 것으로 보이나 확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복식부기에 의한 기장 전 과정인 분개?전기?결산 내용을 전부 포괄하는 완전한 장부가 발견되지 않아 종합적인 분석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박영진가 장부는 완전한 복식부기 장부다. 우리 전통 회계인 개성부기로 알려진 사개송도치부법이 박영진가 장부 분석 결과 복식부기로 최종 확인된 것이다.
박영진가 장부는 회계순환 전 과정인 분개, 전기, 결산을 복식부기 원리에 따라 정연하게 기록했다. 이익 관련 항목 일부를 재배치하면 현대 회계의 재무제표로 쉽게 전환할 수 있는 이른바 검증 가능한 복식부기다. 물론 현대와 비교해 특수성이 존재하지만 이는 오히려 사개송도치부법의 독창성이며, 복식부기 원리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박영진가 장부는 여러 가지 현대 자본주의적 사고를 반영하고 있으며, 현대 경영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박영진가는 개별원가계산, 기회원가, 사내 이전가격, 위험 분담, 상생경영, 신용 위주 경영, 동기유인과 보상 등의 개념을 알고 있었으며, 이들 개념들을 실제 경영에서 활용했다.
서양 복식부기의 영향을 받은 흔적도 없다. 1494년 이탈리아의 루카 파치올리(Luca Pacioli)가 『산술, 기하, 비 및 비례 총람』에서 복식부기 원리를 발표한 이후 복식부기와 회계의 기원은 서양에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현병주 선생이 『실용자수 사개송도치부법(전)』을 펴내 서양의 영향을 받지 않은 우리 고유 복식부기 원리를 설명하고, 이어 그 증거인 박영진가 장부가 발견되면서 복식부기와 자본주의의 기원이 서양이 아닌 동양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서양 자본주의 사상은 서양 고유의 사상이 아니다. 중국에 파견된 예수회 선교사들이 17세기에 유학 경전들을 번역해서 출판하자 유럽 지성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개인의 사적 이익 추구, 자유로운 시장 등 서양 자본주의의 핵심 개념들은 유럽에 소개된 동양 고전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서양 자본주의 사상 형성에는 동양 사상이 큰 영향을 미쳤다.
동양 사상의 원형이라고 평가되는 『관자』는 서기전 7세기의 사상을 집성한 책이다. 이 고대 책이 현대 자본주의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핵심인 신분제 해체를 주장하고, 개인의 사익 추구를 인정했으며, 시장의 역할을 강조했다. 『관자』를 지은 관중은 세계 최초의 자본주의 경제학자다. 관중은 분업에 의한 국부의 증대를 역설했고, 유효수요를 창출할 줄 알았고, 시장 기능을 인정하여 물가를 조절하고 내수를 증진시켰으며, 화폐 가치 변동 원리를 이해하여 활용했고, 자유무역을 옹호했다. 여기에 더하여 자본주의 경제 모순을 시정하는 복지 정책을 치밀하게 실행했다. 관중은 현대 경제학 원리를 서기전 7세기에 잘 알고 있었다.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 나타나는 동정심은 『맹자』의 측은지심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자유방임주의도 도가의 무위자연과 상통한다. 스미스는 노동이 국부의 원천이라고 보았는데, 이는 관중의 관점과 동일하다.
이런 연유로 서양 자본주의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당시 조선에 생소한 사상일 수 없었다. 동양 고전이 오래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타개할 분명한 증거!
일제 강점기 이전에 이미 자본주의적으로 사고하고 경영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의 전통적 시스템과 학문은 단절되었다. 이는 나라가 망했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것을 타기해야 할 대상이라고 부지불식간에 인식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일제가 식민지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것을 폄하한 자학적 역사관인 식민사관을 주입한 영향이 더 클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경제사학계에서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에 비로소 근대화되기 시작했고 자본주의도 도입되었다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이 힘을 얻고 있다. 현대 한국의 경제적·정치적 성장의 원동력을 일제 식민지 시대에서 찾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박영진가 장부는 식민지 정책으로 결과적으로 우리나라가 근대화를 이루고 성장할 수 있었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반박한다. 박영진가 장부의 존재 자체가 식민지 근대화론이 맞지 않다는 직접적인 증거다.
사개송도치부법이 복식부기이고 우리 고유의 치부법이라는 사실은 우리 민족의 독창성을 나타내는 증거다. 고려시대 개성을 중심으로 화폐, 신용, 국제무역, 위임 관계 및 상사단체 등이 발달했던 것을 볼 때 복식부기가 생성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성숙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고려시대의 문자 사용, 인쇄술의 발달, 수학 지식의 보급 정도 등 사회·문화적 여건도 복식부기의 출현을 필요로 하는 수준에 달했다. 또한 서양의 18세기 계몽주의와 자본주의 사상 형성에 동양 사상이 큰 영향을 미쳤으며, 따라서 조선조 말과 대일 항쟁기에 서양 자본주의가 일제를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당시 조선에 생소한 사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재적으로 자본주의적 사고가 전승·발아된 상태였고, 서양 자본주의가 동양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볼 때, 개성상인이 자본주의적으로 사고하면서 경영했던 내용을 담고 있는 박영진가 장부는 일제 강점기 이전 우리 고유의 복식부기가 있었고, 그 사상적 근원에 동양 사상이 있음을 증명한다. 따라서 개성상인의 자본주의적 사고의 연원을 탐색하는 연구는 우리 경제사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조선에 자본주의에 기초한 복식부기 장부가 있었고, 현대 경제 이론과 다름없는 관중의 경제학이 알려져 있었으며, 조선 후기 실학이 근대를 지향했고, 서양 자본주의가 동양 사상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사실이 아직 일반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 학자들이 한국적 전통이 세계적이라는 사실을 깊이 탐구하여 우리의 긍지를 높여야 할 때다.
광주일고, 동아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은행 조사부 등에 근무하다 뉴욕주립대(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Buffalo)에서 경영학 석사(MBA)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시립대(Baruch College)와 동아대학교 교수, 해양수산부?행정자치부 장관, 광주과학기술원 총장을 역임했다. 교수 재임 중 회계, 재무, 증권시장 등과 관련된 영향력 있는 논문들을 발표했고, 은퇴 후 정부 혁신을 설파한 『빛나는 롱런』과 참여정부 정책을 논한 『경국제민의 길』(공저)을 펴냈다. 조선조 말 우리 전통 회계인 개성상인 박영진가 송도사개치부 장부를 연구해 이 장부가 자본주의적 경영 기법을 반영한 완벽한 복식부기임을 밝히는 논문들을 주요 학술지에 발표해왔다. 이 연구 성과로 2014년 매일경제 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광복 후 청산되지 못한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는 데도 애쓰고 있다.
책머리에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복식부기, 박영진가 장부를 읽는다
제1장 경제 활동과 회계
회계는 기업 경영의 공기다 / 회계는 국가를 경영하는 기본 시스템이다 / 서원과 계, 우리 전통 회계의 탁월함
제2장 복식부기의 기본 원리
거래 이중성과 대차평균 / 과정은 복잡하지만 결과는 명료하다 / 세계적으로 통일되고 있는 회계 원칙
제3장 복식부기와 자본주의
복식부기의 기원은 한국과 이탈리아다 / 사개송도치부법은 고려시대에 발명되었다 / 복식부기는 자본주의의 파수꾼이다
제4장 박영진가 복식부기 장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완전한 복식부기 장부 / 거래 이중성과 대차평균을 준수한 복식부기 장부다 / 분개는 각 계정과목에 정연하게 전기되었다 / 결산 결과는 현대 회계로 쉽게 전환할 수 있다 / 현대 회계와의 차이는 개성상인의 독창성이다 / 서양 회계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제5장 박영진가 장부에 나타난 현대적 경영 사고
진실하고 투명하게 회계 장부를 기록했다 / 기회원가를 명시적으로 인식했다 / 삼포도중의 이익은 순현가다 / 사내 이전가격은 시장가격이었다 / 상생경영을 실천했다 / 위험을 감안해 삼포를 경영했다 / 신용 중심 경영이 정착되어 있었다
제6장 관중의 자본주의 경제학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 관중은 세계 최초의 경제학자다 / 정치는 경제가 먼저다 / 관중은 거시경제학자다 / 관중은 시장을 중시했다 / 관중은 따뜻한 경제학자다
제7장 조선 후기 실학의 합리주의적 사고
성리학은 사대부들의 정치 이론이다 / 조선 후기 실학은 근대화 이론이다 / 다산 경학은 근대정신의 구현이다 / 다산의 성기호설은 근대 경제학의 선호이론이다 / 유수원의 『우서』는 빈곤의 경제학이다
제8장 동양 사상, 서양 자본주의에 영향을 미치다
예수회 선교사들, 동양 사상을 유럽에 소개하다 / 계몽주의자들은 동양 사상에 환호했다 / 자본주의 경제학은 동양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 동양 시스템은 실패하지 않았다
책을 마치며
참고문헌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