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에서 혼자 있던 시간이 준 선물
조금 떨어져서 보면 삶은 더 편하게 느껴진다
◎ 때론 산책하듯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우린 너무 열심히 산다. 학생은 학생대로,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다들 열심히 산다. 자신을 둘러싼 틀을 답답해하면서도 그 틀에서 벗어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다들 틀 안에서 버티며 살고 있다. 그런데 그 틀을 벗어나면 정말 큰일이 날까?
대다수가 선택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기준으로 본다면 서른 살에 유학을 떠나 혼자 공부하는 여자는 ‘비정상’이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회가 원하는 틀을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나 있으니까. 심지어 박사 과정 유학을 권하던 교수마저 “너 올해 나이가 몇이냐? 괜찮겠어?”라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서른 살에 혼자 공부하는 여자라는 짐을 짊어지고 떠나왔는데, 오히려 삶이 가볍게 느껴지니 말이다. 서른 살에 뉴욕으로 공부하러 떠났던 《두 도시의 산책자》의 저자 장경문은 익숙해질 듯하면 또 새로운 것이 나타나는 낯선 도시에서의 생활은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주변을 살펴볼 수 있게 해 주는 기회가 되었다고 말한다. 뉴욕 학교에 적을 두고 있지만 현지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철저히 이방인도 아닌 상태는 삶을 조금 떨어져서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덕분에 그녀는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전력질주 하던 것을 멈추고 서울과 뉴욕을 산책하듯 가볍게 살아 본 경험은 그녀에게 많은 생각과 질문을 던져 주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과 싫어서 견디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결혼과 임신, 육아를 비롯한 여자의 삶, 그리고 공부하는 목적 등 일상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낯선 도시 뉴욕에서 찾은 가볍게 사는 즐거움을 《두 도시의 산책자》에 담았다.
저자는 꼭 낯선 도시로 떠날 필요 없이 나를 가둬 둔 틀 안에서 눈을 들어 조금 떨어져서 주변을 바라보기를 권한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인생이 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금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면 이 책의 저자처럼 산책하듯 인생을 보는 것은 어떨까.
◎ 익숙함과 낯섦 사이에서 나를 발견하다
《두 도시의 산책자》는 서울과 뉴욕의 문화와 일상을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뉴욕 사람들은 햇빛이 조금이라도 나며 공원 여기저기에 누워 일광욕을 즐긴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모자와 선글라스로 중무장을 하고 햇빛을 피하려고만 한다. 뉴욕 사람들은 ‘Thank you.’를 입에 달고 사는데, 동방예의지국이라면서 한국은 문을 잡아 줘도 양보를 해 줘도 고맙다는 말도 없다.
저자가 두 도시의 삶을 비교하는 건 어느 도시가 더 낫고 어느 도시가 더 못하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익숙한 것들과 낯선 것들 사이에 있으니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사람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생각과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를 분명해졌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그녀가 두 도시를 산책하면서 얻은 것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답이었다.
사소하게는 좋아하는 커피 맛이 무엇인지 알았다. 커피 카페인에는 반응하지 않지만 홍차 카페인에는 민감해서 늦게까지 공부할 때 커피를 몇 잔씩 마셔도 괜찮았다. 유학 중 영어 이름을 만들지 않고 한국 이름을 쓰면서 이름이 갖는 의미를 생각했다. 임신 중 뱃속의 아이 때문에 약 하나 제대로 못 먹으나 낳고 나니 그래도 내 몸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신에게는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군밤을 좋아하고, 겨울을 좋아하고, 추억의 장소는 냄새로 기억하고, 무례한 사람을 싫어하고, 뉴욕에 산 지 4년인데도 어딜 가나 듣는 ‘웰컴 투 뉴욕’에 동양인에 대한 차별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공부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속도가 느린 사람이라 학문에서 성과를 내는 것보다 다른 일을 하는 게 더 자신에게 맞겠다는 것도 깨달았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 가고,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가게 되니 삶은 더 이상 무거운 짐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두 도시의 산책자》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 평범한 일상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 예쁘다
난로 위 주전자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옥수수차, 지하철 입구에서 할머니들이 굽는 군밤의 고소한 냄새, 겨울에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반짝이는 거리, 진열장에 알록달록 누워 있는 디저트들, 빨갛게 무친 오이무침과 기름에 볶은 오이나물, 복잡한 상점 끝에 위치한 생선 가게와 파란 간판의 그리스 과자점….
《두 도시의 산책자》에 묘사하는 일상들은 평범하다. 뉴욕에 가지 않더라도 우리가 늘 지내 온 하루다. 그런데 저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일상은 하나하나가 새롭다. 옥수수차를 끓이다 어린 시절 부엌에 있던 석유난로를 기억해낸다. 한입 베어 물면 입안에 퍼지던 달콤한 그리스식 과자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던 뉴욕의 자유로움과 함께 임신 당뇨 때문에 철저히 식단을 관리해야 했던 힘든 임산부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크고 작은 일상들이 모여 삶이 이루어진다. 그 작은 일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색깔을 가지게 된다. 저자는 자신을, 그리고 주변을 다르게 바라보면 계속해서 새로운 시간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른 모습이 보인다. 그 새롭게 발견한 모습들이 모여 삶이 반짝반짝 빛나게 될 것이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원에서 미술이론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미술관과 미술대학 조형연구소에서 근무하다가 문화사를 연구하겠다고 호기롭게 유학을 떠나 엔와이유(NYU) 동아시아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서른 살에 시작한 뉴욕에서의 박사 과정 중 경험한 일상과 학업, 결혼, 출산 등에 관한 이야기들을 책 《두 도시의 산책자》에 담았다. 잠깐의 여행보다는 길게, 완전한 이주보다는 짧게 머물렀던 4년이라는 시간은 현지인이면서 동시에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삶에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때 관찰한 자신의 진짜 모습들, 일상에서 느낀 점들, 생각할 거리들을 기록했다.
현재는 서울에서 두 딸을 키우며 틈틈이 글을 쓴다. 최근에는 언니와 함께 장소(JAHANGSO)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공예품을 제작하고 유통하는 일을 하고 있다.
프롤로그 - 우리는 늘 새로운 시간을 살고 있다
1장 혼자 있던 시간이 준 선물
나의 첫 뉴욕
시리얼이 사라졌다
허리케인 샌디
창문의 공격
서른 살, 공부하는 여자
선택은 각자의 몫
2장 낯선 도시에서 사랑하게 된 것들
워싱턴 스퀘어 파크가 캠퍼스
처음 먹어 보는 맛
나의 그리스식 디저트
백 년 된 뉴욕의 지하철
휘트니 미술관
슈퍼마켓 투어
3장 눈치 보지 않고 나답게
브런치 맛집 찾는 법
커피 맛을 배우다
겸손은 부덕
내 이름 제대로 불러줘
디저트는 한 입만
레깅스는 바지인가
햇빛에 대처하는 자세
4장 인간에 대한 예의
고맙다는 말이 어려운가요
웰컴 투 뉴욕에 담긴 인종차별
뉴욕의 한국인들
러시 티켓
난로 위 옥수수차
임산부석이 필요한 게 아니야
백화점의 유모차 부대